조나단
"기분 좋은 밤이구나."
"아름다워요, 아버지?"
"왜?"
"아무것도 아녜요."
나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두려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내가 더 현명해지고, 더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세상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다음에 일어날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자 그대로 하룻밤 새에, 아버지의 허파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나빠지고 있었고, 나는 혈관 속에 침략자가 들어와서 곧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아파트에서도 올즈모빌 자동차 안에서도 쇼핑센터에서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막의 별빛 아래에서라면 좀더 결단력 있게 말을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고양이가 네 혀를 물어 갔니?"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아직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자부심이 높고 어떤 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지막 비밀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를 알아 주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나는 자리를 잡고 목표를 성취해서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이해할 수 있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에게 나를 알리는 것을 미뤄 왔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난 그 잔디 깎는 기계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기계가 뭐 어쨌는데요?"
"가격이 정말 괜찮았거든. 내일 나랑 같이 가서 그걸 사는 게 어떻겠니? 그러면 너한테 그게 필요해질 때까지 내가 여기에 보관해 둘게."
"그 동안 아버지가 사용하실 거예요?"
"내가? 내가 깎을 잔디가 어디 있니? 돌투성이 정원을 그걸로 손질할까? 집에 자동차 두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차고가 있으니까 물건 놓아 둘 데는 많아."
"그러니까, 혹시라도 제가 잔디밭을 갖게 되면 여기까지 와서 십 년이나 이십년쯤 낡은 기계를 가져가란 말씀이세요?"
"세월이 흐를수록 새로 나오는 물건들은 옛날보다 못해. 네 어머니가 후버 전기 청소기를 얼마나 다시 갖고 싶어하는 줄 아니? 아무리 돈이 많이도 이제 그런 물건은 살 수 없어. 요즘 나오는 진공청소기는 전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뿐이야."
"아버지 정말로 그걸 살 생각은 아니죠?"
"무슨 소리냐? 넌 좌우간 이 집에 있는 걸 전부 물려받을 텐데, 언젠가 미래에 좋은 잔디 깎는 기계를 물려받는 게 뭐 어때서? 그때가 되면 잔디 깎는 기계는 죄다 고무로 만들어져 있을 거다."
"전 잔디 깎는 기계가 필요 없어요. 정말 그래요. 고맙지만 거절하겠어요."
"그래도 난 살 거야. 그러면 그 기계는 여기에 있게 될 거고 이담에 정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구세군이나 어디 다른 데 줄 수도 있잖아."
"아버지, 전 잔디 깎는 기계를 갖고 싶지 않아요."
"글쎄, 한번 두고 보자꾸나."
"저는 자동 드릴도 필요 없고 전자레인지도 필요 없고, 머큐리 세단 자동차도 필요 없어요. 로토틸러도, 낚싯대도, 하루 종일 커피를 뜨겁게 보관해 주는 보온병도 필요 없어요."
"그만, 그만, 그렇게까지 흥분할 필요 없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거예요. 왜 저는 제대로 된 인생을 꾸리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부 밑에서 얼굴 근육이 한데 모이는 이 표정은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이나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맞닥뜨렸을 때 이런 표정을 지었다. 이목구비가 자꾸만 중앙으로 모여들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은 정말로 주름이 잡혀서 쭈그러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피트나 떨어진 곳에 있는 열쇠구멍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 같았다.
"너도 뭔가를 찾아내게 될 거야. 넌 아직 젊어. 그런 일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
"아버지 경우에는 어땠어요? 아버지도 저 같은 시절이 있었으니까 벌써 알 것 아녜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나는 직업도 괜찮고 연인도 친구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왜 저는 이렇게 감각이 마비된 것 같고, 세상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죠? 왜 내가 인생의 낙오자라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아버지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아버지한테 책임을 묻지는 않을게요. 전 그냥 알고 싶어요."
아버지는 잠시 가만히 서서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버지의 얼굴이 계속 쭈그러들고 있었다.
"난 널 사랑했었다. 난 열심히 일했는데, 나도 모르겠다. 틀림없이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모양이다. 네 어머니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너를 돌봤어."
"그건 저도 알아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내가 이토록 엉망진창이 돼 버린 걸까요?"
"넌 엉망진창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한테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제 질문에 답이나 해주세요."
"나는 너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눈이 흐릿해지면서 입이 조금 벌어졌다. 아버지는 무슨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물론 뭔가가 있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울음을 멈추지 않았을 때 갑작스럽게 내가 밉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고, 질투 때문에 못된 짓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실수라든가 해야 할 일을 빼먹은 것, 또는 나에대한 사랑이 잠시나마 식었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 질문에 대해 전혀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우리에겐 드믄 일이었다. 보통 아버지와 나는 침묵을 회피했다. 우리는 둘 다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었고, 이야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주변을 부산하게 채우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낫처럼 생긴 매의 그림자 하나가 별들 위로 스쳐 지나갔다. 빈 세븐업 깡통이 달빛 속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버지? 괜찮아요?"
아버지가 공기를 들이마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이 흐릿해졌고, 눈도 이상하게 커져 있었다. 물 속에 있다가 갑자기 호흡을 할수 없는 찌르는 듯한 빛 속으로 끌려 나와 넋을 잃어버린 물고기 같은 표정이었다.
"아버지? 말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머리를 흔들었다. 가장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여기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치려면 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부인해 버릴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나는 절망적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내가 어떻게 해야 돼요?"
아버지가 나더러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내가 아기였을 때와 똑같은 아버지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허파에서 풍선을 거칠게 문지르는 것처럼 끽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마치 사기그릇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몸을 낮춰 앉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붙든 채 고운 가루 같은 땅 위에 아버지와 함께 앉았다.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버지를 어디에 묻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한때는 아버지의 머리카락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만큼 숱이 많고 풍성했었다.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버지에게 할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던지는 진부한 말들뿐이었다. 그런 말은 길 가던 낯선 사람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에게 그런 진부한 말을 했다.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가 침묵 속에서 죽어 가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아버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숨을 쉬려고 애를 쓰느라 아버지의 얼굴이 더 검고 크게 변해 갔다.
"엄마와 나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괜찮을 거예요. 정말 괜찮아요.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아버지가 내 말을 제대로 듣고나 있은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 내면 속으로 멀리 들어가서 자신의 존재 전체를 부실한 허파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와 어깨를 손으로 자꾸 쓸어 내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얼마 지나고 나서 아버지는 서서히 회복 되었다. 공기가 다시 그의 허파 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에서도 순간순간마다 목이 졸린 것 같은 표정이 사라져 갔다. 지쳐 버린 그의 허파가 다시 조금이나마 산소를 빨아들이려고 애를 쓰는 동안 우리는 땅 위에 함께 앉아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리를 했나 보다. 내가 아까 좀 흥분을 했었거든."
"아버진 여기 가만히 계세요. 제가 가서 사람을 불러 올게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질 거다. 돌아갈 때 아주 천천히 걸으면 돼. 알았지?"
"그래요. 그래야죠. 아버지, 죄송해요."
"뭐가?"
나는 아버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우리는 집까지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나올 때는 이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제 돌아가는 길은 한 시간이 넘게 걸릴 것이다. 머리 위에서 별빛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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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ome at the End of the World